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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of Korea 우리나라도 함께한 엑스포

박람회 역사관련 이미지
구한말 국악공연과 민속품 전시를 통해
세계박람회에 첫선을 보였던 한국
그리고 100년 뒤 1993년
대전엑스포를 개최함으로써
세계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국의 엑스포 참가 역사

01 박람회와의 첫 인연

우리나라 최초의 외교사절단인 보빙사

1883년 미국을 방문한 우리나라 최초의 외교사절단인 보빙사.
뒷줄 왼쪽부터 무관 현흥택, 통역관 미야오카 츠네지로, 수행원 유길준, 무관 최경석,
수행원 고영철, 변수, 앞줄 왼쪽부터 퍼시벌 로웰, 홍영식, 민영익, 서광범, 중국인 통역 우리탕.

01 박람회와의 첫 인연

한국과 세계박람회와 인연은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식적으로 참가한 첫 세계박람회는 1893년 시카고박람회였다.
하지만 10년 앞서 국제박람회와의 조우가 있었다.

10년 앞선 국제박람회와의 조우 1883년 5월 서방 국가에 첫 파견한 외교사절단 ‘보빙사’의
보스턴 박람회 참관이 그것이다.
보빙사의 미국 방문 이후 우정국 신설, 경복궁의 전기시설 및
목축 시험장 설치 등 서양 문물이식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02 세계박람회 첫 참가, 1893 시카고박람회

우리나라 최초로 참가한 1893년 미국 시카고 박람회 조선전시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참가한1893년 미국 시카고 박람회의 조선전시실.
장식용 기와 지붕을 올리고 각종 민예품을 전시했다.

02 세계박람회 첫 참가
(1893 시카고박람회)

조선은 1893년 시카고박람회에 최초로 참가하게 되었다. 참가단장 정경원은 사무원, 통역원, 장예원 소속 국악사 10명을 이끌고 조선을 대표하는 박람회 사절로 활동했다. 시카고 박람회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였다. 각종 건축물 또한 보는 이를 압도할 만큼 웅장했다. 그 안에 자리 잡은 조선 전시실은 비록 작은 규모였지만 도자기, 모시옷, 부채, 갑옷 등 이국적 풍모에 관심을 끌었고 개막식 날 전시실 앞에서 단아한 조선 아악을 연주했다. 그해 12월 조선으로 돌아온 정경원은 고종에게 전람회 활동 내역을 복명했다. 그가 당시 서양 문물 도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고종에게 보고하는 장면이 <승정원일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미국의 물색의 장관이 어떻더냐?”
“매우 은성하더이다.”
“몇 번이나 대통령을 보았느냐?”
“시카고박람회에서 보고 4월 워싱턴에 가서 또 보았습니다.”
“미국의 접대가 어떻더냐?”
“매우 관후하더이다.”
……
……

Episode

태극마크 달고 달리는 미국열차?

03 세계박람회 두번째 참가
1900년 파리박람회

자료수집가 폴 제르의 책에 나온 한국관 사진

파리에 거주하는 자료수집가 폴 제르의 책 <1900년>에 나온
한국관 사진을 찾아 공개했다.

03 세계박람회 두번째 참가
1900년 파리박람회

프랑스의 초청을 받은 조선은 프랑스 건축가가 조선 궁궐 외양을
본떠 지은 한옥전시관을 할당 받았다.
전시관 내부에는 중앙에 고종의 어진을 걸고 각종 생활용품을
전시했다.

당시 프랑스 신문 기사는 조선 전시관 모습 (화려한 색상의 단청과
하늘을 향해 솟은 처마)과 생활 문화 (한지‧나전칠기‧서화작품)
전시물을 소개했다.

04 국권침탈과 식민 통치용 박람회

국권침탈과 식민 통치용 박람회

1915년 일제는 근대 산업화의 발전을 홍보하기 위해 경복궁 정문 앞에서
‘조선물산공진회’ 박람회를 개최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04 국권침탈과 식민 통치용 박람회

일제의 주권 침탈 이후 국제 박람회 참가의 길이 막힌
조선에서는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는 각종 박람회가 열렸다.
《한국의 근대박람회》, 이각규, 커뮤니케이션, 2010

1915년 열린 조선물산공진회는
조선의 법궁 경복궁이 침탈되어 유흥 행사장으로 전락한 뒤
조선 총독부에 자리를 내어주는 통한의 역사의 출발점이었다.

한국의 엑스포 참여 현황

신흥공업국, 엑스포의 문을 두드리다
1962년 시애틀박람회 참가

시애틀박람회

‘우주시대의 인류’가 주제였던 시애틀박람회에서 한국은
재봉틀·라디오·타이어·철물제품· 고무신·치약 등 공산품과
왕골·죽·유기제품·도자기류 등 전통 공예품 1608점을 선보였다.

신흥공업국, 엑스포의 문을 두드리다
1962년 시애틀박람회 참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참가한 세계박람회는 1962년 시애틀박람회였다.

한국은 자력으로 326제곱미터 규모의 번듯한
국가 전시관을 짓고 국제사회에 한국을 널리 알렸다.

남의 잔치 들러리에서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시애틀박람회

1970년 오사카박람회에서 한국은 ‘보다 깊은 이해와 우정’을 주제로
4150제곱미터의 역대 최대 전시관을 세웠다.

남의 잔치 들러리에서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한국은 이후 열린 BIE 공인 엑스포에 빠짐없이 참가했다.

1967년 몬트리올박람회에서는
한옥의 처마와 단청 등을 현대식 건물에 접목시킨
장방형 목재 전시관을 선보였다.(김수근 설계)

전시관은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할 수 있는 사진과
고려청자‧분청사기 등 생활용품과 각종 산업전시물을 전시하였고
각종 민속공연과 만찬 행사가 열렸다.

[출처: 오룡,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 다우출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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